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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손이 멀어질 때쯤 전시전경
S-M-L-XL-XXL, 390x540x83cm, 가변설치, 알루미늄 망, 벨트버클,  (3).jpg

<S-M-L-XL-XXL> 2024, 390x540x83cm, 가변설치, 알루미늄 망, 벨트버클

<일상 전개도> 2024, 43x298x15cm, 옷걸이, 알루미늄 망

일상 전개도, 43x298x15cm, 옷걸이, 알루미늄 망, 2024 (2).jpg
일상-전개, 11x780x15cm, 옷걸이, 알루미늄 망, 벨트버클, 2024 (2).jpg

<일상-전개> 2024, 11x780x15cm, 가변설치, 옷걸이, 알루미늄 망, 벨트버클

일상-전개, 11x780x15cm, 옷걸이, 알루미늄 망, 벨트버클, 2024 (1).jpg

<중심을 잡기 위한 행동> 2024, 100x190x220cm, 거울필름, 알루미늄 망, 수평계, 철제 프레임, 스피커, 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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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손이 멀어질 때쯤                                             

글 I 김옥렬  전시기획자, 아트리뷰카이 편집
 

1.

  <눈과 손이 멀어질 때쯤>이라는 김가민의 전시 주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주제를 통해 작가는 세 가지의 설치작업을 준비 중인데, 첫째는 <일상-전개> 둘째는 <S-M-L-XL-XXL> 그리고 셋째는 <중심을 잡기 위한 행동>이다. ‘눈과 손이 멀어질 때쯤’이라는 주제에 전제된 것은 시각적 ‘눈’과 ‘손’이라는 촉각적 의미가 갖는 관계 인식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내재된 것은 조형적 태도와 재료가 가진 시·촉각적 의미 혹은 그 자신이 경험하는 사회 문화적 관계망, 즉 시대적 ‘불안’이 녹아든 1) 에피스테메(épistémè)가 아닐까.

  이번에 전시될 설치 중에서 <일상-전개>는 세탁소 옷걸이의 한 부분을 잘라 10개를 하나로 이어 붙여 촘촘하게 옷을 입히듯 알루미늄 망으로 감쌌다. 이 옷걸이는 고리를 중심으로 마치 양팔을 펴서 손에 손을 잡듯 선형으로 이어져 벽에 못처럼 박혀 있는 여성용 구두 굽(은색)에 걸어서 벽(세로)을 따라 바닥(가로)으로 길게 드리우듯 설치되었다. 작가는 이를 “획일적으로 변화한 자신의 지난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설치작업의 하나인 허리둘레의 길이를 나타내는 <S-M-L-XL-XXL>는 표준화된 여성복 허리둘레 길이를 알루미늄 망을 재료로 벨트를 제작했다. 그 길이는 300명분의 벨트가 사이즈 순서로 연결되어 바닥에 쌓여있거나 일부는 중력을 역행해 천장을 향해 공중부양 하듯이 솟아있다. 이 설치에 투영된 작가적 시각은 신체 측정의 표준단위의 한부분이 뒤엉켜 사슬처럼 연결된 시스템, 그 속에서 타자의 시선을 통해 내화되는 개인과 집단의 불안에 대한 시각적 형상일 것이다.

또 하나의 설치작인 <중심을 잡기 위한 행동>은 구겨진 거울 필름 막으로 둘러싸인 공간내부에 버스의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다. 이 설치물 내부로 들어서면 작가의 신체를 기준으로 손이 닿을 듯 말듯 한 위치에 손잡이가 매달려있다. 손잡이 가까이 다가가면 흔들리는 버스처럼 움직임이 작동하고 동시에 심장 박동수에 맞춰 변형한 사운드가 울린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몸의 중심을 위해 손잡이를 잡고 있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수많은 익명의 인간군상, 그 사이에서 교차하는 불안정한 심리적 상황을 담고 있다.


1) épistémè [epistemε],  원래는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특정 사회 및 그 시대의 학문적 지식의 총체이자 인식의 체계(사유의 범위), 어떤 특정한 시대의 문화를 규정하는 심층적인 규칙의 체계를 말하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쓴 용어.(백과사전참고)

2.

  김가민의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안’에 관한 것이다. 전시의 주제인 ‘눈과 손이 멀어질 쯤’에 내재된 작가의 의도는 “보기 싫은 장면이 눈앞에 등장하게 되면 급히 손으로 눈을 가려 상황을 순간적으로 외면한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인지하지만 외면했던 불안정한 모습을 직면하기 위해 스스로 눈에서 손을 떨어뜨려 바라보고자 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일상에서 피하고 싶은 것을 마주할 때 손으로 얼굴을 가려 외면했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심리적 변화가 투영되었다.

작가의 심리적 변화란, ‘불안’을 벗어나 ‘주체’를 구성하는 실험적 변화가 담긴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다. 그렇다면 시각예술을 통한 김가민의 ‘주체성’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작가에게 있어서 이번 전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고유한 정체성(주체의식)을 가지고자 ‘내적인 힘’, 손으로 눈을 가리지 않고 직관할 수 있는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태도, 즉 불안을 벗어나 주체의식을 실천하기 위한 시도다.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 주체성>을 주제로 삼았던 작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상-전개>에서 보여주었던 ‘전개도법’은 관찰자 시점인 일시점과 다시점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간인식(2차원에서 3차원 나아가 다차원의 공간)의 변화를 ‘가변적’설치로 시각화 했다. 이러한 시도는 다양한 방식의 평면 전개도(일시점)와 일상의 오브제를 선택해 공간입체(다시점)를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공간을 해석하는 오브제 설치를 통한 시·지각적 변화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작가는 시각미술이라는 전제를 통해 삶의 진폭을 담아가는 창작태도가 무엇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지, 다시 새로운 물음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에 대한 응답을 위한 방법적 변화를 실천하는 장이다.

이번 전시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와 아이디어 스케치를 토대로 예상 가능한 부분에 대한 글을 인용해 보자면, “이번 작업은 그간에 외면했던 나 자신의 모습과 직면하기 위해 스스로 눈에서 손을 떨어뜨려 바라보고자 하는 방법적 변화가 담긴 작품을 시도한다. 전시의 주제인 <눈과 손이 멀어질 때쯤>에서는 사회 속 나와 집단에서 발생하는 관계에서 생성된 타자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절대적 기준점으로 지정해 상황에 따라 변화했던 주체에 관해 이야기한다.”(인터뷰&작가노트참조)

이번 전시를 위한 재료는 알루미늄 망이다. 이 망의 특징은 규칙적으로 가로와 세로가 무수히 연결된 선들이 교차하는 가로 세로 격자(grid)로 짜인 유연한 재료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를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재료의 특징에 빗대어 타자의 시선에 영향을 받아 주체가 사라진 모습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사용한다.” 무엇보다 가변적 시각을 통해 창작과정에서 투영된 심리적 효과는 이후 작업적 변화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 지점은 개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안’심리가 평면, 입체, 설치라는 방법적 변화를 통해 ‘눈과 손이 멀어 질 때쯤’ 작가의 작품에는 어떤 일이 있어날 것인지, 그 변화에 기대감이 앞선다.
 

3.

  확실히 이전의 전시가 평면과 입체를 통한 일시점과 다시점의 관계에 대한 시·지각적 방법론을 충실하게 탐구했다. 이전에는 조형성과 심리적 의미망에 대한 가변적 작업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피하지 않고 직시하겠다는 태도가 담겨있다. 이번 전시에서 불안’을 직시하겠다는 작가의 태도는 창작활동을 위한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이전의 작업이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 주체성’을 찾아가는 방법적 시도였던 <보이지 않는 선>, <모나지 않기 위한 방법>, <자라는 벽>, <새어나온 이야기>, <시선-일상이야기>를 통해 평면과 입체 설치로 조형적 시각과 심리적 요소 간의 방법적 변화를 모색했었고, 그것은 일상의 경험과 심리적 관계망 속에서 시각미술을 탐구하는 작가적 실험이었다. 이번 전시의 경우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적 변화는 ‘규칙’과 ‘불규칙’,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지각적 관계인식에 따른 접근 방식이다.

여성의 표준화된 허리사이즈를 투영한 설치작인 <S-M-L-XL-XXL>는 알루미늄 망을 재료로 벨트로 제작해 사이즈 순서대로 이어 붙였다고 한다. 이 작업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숫자로 환산된 신체의 크기를 통해 신체를 측정하는 표준단위에 대한 의미망으로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를 하나로 연결했다.

작가는 S-M-L-XL-XXL 순서로 끝없이 이어진 이 작품은 자신이 전제한 규칙에서 스스로 뒤엉킨 사슬처럼 내면에서 무수히 자라난 불안 심리를 형상화 했다. 21세기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경쟁은 일상이 되었다. 이 피로한 사회에서 도시인의 ‘불안심리’는 깊게 내재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에게 있어서 ‘불안’은 어떤 의미로 작용할까? “나의 작업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행동과 모습을 재단하고, 그 기준을 벗어나면 불안을 느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렇듯 ‘불안’은 작가에게 있어서 창작을 위한 주제이자 동시에 극복대상이다. 그렇기에 불안 심리에 직면하는 것은 ‘주체’를 인식하는 시간이자 동시에 창작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김가민에게 있어 창작의 과정은 불안에 직면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진 주체성, 은폐된 감정에서 온전히 자신을 건져 올리는 시간인 동시에 타자를 통해 자아를 감각하는 자기인식의 과정일 것이다.

김가민의 전시 ‘손으로 눈을 가리지 않을 때’, ‘그 때쯤’은 ‘눈과 손이 멀어져 있을 것이다. 누구나 주어진 삶에서 경험하는 도시인의 일상, 작가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탈피하고 온전한 ‘주체’가 되는 시간을 치열하게 그러나 묵묵히 품는다. 이번 전시는 눈을 가리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 누구와 공감의 마음길이 열릴 것인지, 자못 기대감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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